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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생

이렇게 살았다 3 "운전면허"

by 노당큰형부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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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31일 첫 번째 운전면허 취득

 

경북상회를 그만두고 얼마간 쉬면서

인천 숭의동 기차길에 접해 있는 모 운전학원을 찾아가 등록하였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 부터 12시까지 학과 1시간 실기 1시간을 아주 열심히 열강을 받았다.

경북상회에서 선박용 야끼다마 엔진을 분해 조립하는 과정을 어깨 너머로

본 기억이 있어서 자동차 구조 부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모의시험도 올 100점이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수강생들과 한 주를 공부하던 중 첫 번째 시험일자가 확정되었다.

응시를 해 보겠냐고 묻길래 자신이 없지만 한번 해보겠노라고 하고 신청을 했다

학원 수강 일자가  날수로 8일,

 

1971년 3월 31일 필기시험도 참 쉬웠고 코스도 깃대 하나도 안 건드리고 쉽게 끝냈다.

 

미자(여동생)가 걱정하면서 따라와 응원을 해준 덕인가?

너무 쉽게 장거리까지 끝내고 돌아와 합격했음을 통지받고

같이 수강한 동료들과

서로 축하의 악수도 나누며

학원 인근의 대폿집에서 동료들과 점심 겸 대포도 한잔씩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그날 오후 3시경에 학원 사무실에서 면허증을 수령했다.

 

주민등록번호130XX1-103X54 성명 박문규

종별 1종, 보통

경기도 경찰청장이 발행한 이 시대 대한민국 최고의 자격증….

 

보드라운 파란 비닐 양장으로 제작된 작은 수첩 형으로

안쪽엔 내 준수한(?) 얼굴 사진과 함께

예쁘게 만들어져 나온 면허증은 가히 국가 공인 인증서라 할만했다.

(1971년 3월 31일 내가 취득한 운전 면허증 외피)

 

이렇게 취득한 면허증을

1974년 적성 검사를 받지 않아 써 보지도 못하고 면허가 취소되었지만

취소되기 전엔 가끔 무면허 화물차 기사들이

장거리 화물 운송을 나갈 때 면허증을 빌려 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운전 일을 하며 돈을 벌려고 취득한 면허가 한 번도 써 보지 않고 장롱 속에 파 묻히고

첫째

운전을 하지 안아도 되는 직업이 생겼기 때문이고

두 번째

당시 생활 형편이 자가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대였기에

운전면허 적성 검사를 받고 재 교부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1974년 7월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 공업 주식회사에

임시 공으로 입사할 때

이력서에 "제1종 보통 운전면허" 소지라고 자필 이력서에 기입할 정도로 

자동차 운전면허증은 입사자격에 상당한 프러스 요인이 되었을 것이었다.

 

 

 

※ 다음회엔 두번째 

    운전 면허 취득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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