彈琴臺
탄금대는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다
국립 한국 교통대학교 석좌 교수이시며 국제 정치학 박사이신
예비역 육군 소장 안충준 박사(전 유엔 평화유지군 초대 사령관)께서
친절하시게 충주 탄금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 탄금대는
대문산을 중심으로 남한강 상류와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 순변사 신립(申砬)이
적은 병력으로 출전하여 이곳에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대결하였으나
중과 부족으로 패전하고 부장(副將) 김여물(金如岉)과 함께 전사한 격전지이다
그리고
지금은 충주댐이 준공되고부터 호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또한 탄금대 부근에 중원 탑평리 7층 석탑(국보 6호)을 비롯하여
중원 고구려비(국보 205호)등 귀중한 문화재가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며
충주 중앙탑은 신라 때 국토 동서남북의 중심점이라는 설도 있다
(참고문헌:충청북도 문화재 지 1982호)
탄금대에는 1953년에 세운 탄금대를 비롯하여
1977년에 세운 악성 우륵선생 추모비, 1978년에 세운 신립장군 전적비,
1968년에 건립된 권태응(權泰應)의 감자꽃노래비,
1970년에 세운 탄금정과 그밖에 충혼탑, 충주 문화관 야외 음악당 등이 있다.
주현미 노래 탄금대 사연
안충준 박사님의 지시에 따라
오병규 님과 노당이 신립 장군의 구국충정 애국정신을 기리며 묵념을 했다.
왜적에 항거하며 부른 감자꽃 노래비
안 교수님의 부연 설명으로 탄금대의 유래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가야국의 樂聖 우륵이 신라에 귀화하고 명성이 진흥황에게 알려져
하림궁에서 세곡을 지어 연주하니 왕이 감동하여 충주에 살도록 윤허하였다.
우륵은 그를 보호하던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는 노래를,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치며
여가 있을 때마다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며 살았다.
탄금대라는 명칭도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노당은 세상에 태어난 시간이 달라 등에 활을 메지 않고
허리엔 장검을 차지 않고 손에는 한자 다섯 치(45cm) 채찍을 들지 않는 사나이지만
탄금대의 老松을 보며 그대 신립장군의 애국정신을 오늘 되새겨 본다
"아~! 젊은 신립(1546~1592)이여
그대와 노당이 어깨를 나란히 적토마를 타고 노도같이 질주하며
활을 잡고 창검을 휘둘렀다면
굳이 배수진을 치지 않고도
나라를 지키고 푸른 솔과 같이 청청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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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에 어울리지 않는 민망한 조각상들
충주시 문화재 관리자들은 이 조각상들을
음란 물로 규정하고
폐기하거나 이전 할 것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