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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 의무를 다하며 사는 대한민국 보통 사람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
명상과 내생각

엄마가 말해준 6.25 참상(끝)

by 노당큰형부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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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팔자인가?

큰애를 업고 걷던 어머니가 힘이 든다며 잠시 쉬어 가자며

자리에 철퍼덕 주저 앉았고

우리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이와 내가 아이를 받아 안고 달래며 보니

귀에서는 피고름이 흐르고 궁둥이와 종아리는 모기에 물려 여러 곳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에미의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눈을 감은체 고통을 참느라 신음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온갖 설음이 북받쳐 오른다

"어머니, 문규 아버지~! 이러다 문규 죽는 것 아니유?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문규 아버지 어머니 우리 애좀 살려 줘요 네?"

 

나도 그렇고 아이의 처지도 처절하고 비통하건만 이 피난 길에서 어이 하겠는가.

 

일각이 여삼추라 우리는 몇 분 쉬지 못하고 행군을 계속되었다.

파리와 모기가 들끓는 이곳 산자락 오솔길에 언제 파 놓았는지

구덩이마다 빠짐없이 들어 있는 국군인지 인민군인지 민간인 인지도 모르는

빡빡 머리 주검들이 썩는 냄새를 피우며 우리들 발끝에 자꾸 차인다.

 

(웅덩이마다 들어 있는 주검들:자료사진)

 

그런데 막내 삼촌(15살)이 수상하다

막내 삼촌도 문규의 신음 소리 때문에 추격자들에게 잡힐까 불안해하며

나를 자꾸 쳐다보며 안절부절하는 것이 수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앞만 보고 가는 중에 어머니로부터 큰애를 빼앗고는

"어차피 문규는 죽어요 버리고 가요, 그래야 우리라도 살아요"

하며 뒤로 뛰어가더니 송장들이 있는 구덩이에 던지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업고 있던 둘째를 내려놓고 재빨리 달려가 막내 삼촌을 밀어내고

송장 속에서 뒹굴며 꿈틀대는 문규를 꺼내 안고 나오며 막내 삼촌에게

이 세상에 남아 있는 한을 풀듯 이 세상에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퍼부으며 고함을 질러 댔다.

"이 나쁜 놈아 네 새끼가 아니고 내 새끼다~ 죽여도 내가 죽이고

살려도 내가 살린다, 이놈아~!! 이 천하에 벼락을 맞을 놈아 내 새끼란 말이다"

 

미물도 제 새끼를 해코지하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물 불 안 가리고 달려든다

하물며 사람일진대 아무리 죽을병이라도 죽으라고 송장 더미에 버리는데

어떤 어미가 참고 있겠는가?

삼촌을 죽으라고 떠밀던 그 힘과 고함 소리가 한밤의 팔매실을 뒤 흔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막내 삼촌은 살기 등등하던 내 기세에 주눅이 들었었고 이후

죽을죄를 지었노라고 골백번 사죄했으며

내 말이라면 무조건 잘 따랐다.

 

큰애는 총명하긴 했지만 워낙 병약하고 몸도 약해 빠져 어려서부터

귓병을 앓았고 온몸은 부스럼에 피고름이 잔뜩인 채로 피난 생활을 하였기

치료도 못하고 거의 죽어 가는 상태였다

하루는 피난 올 때 가져온 군용 담요를 팔아 치료비 몇 푼을 마련해 침 치료를

하려고 하자 자기를 죽이는 줄 알고 닭똥 같은 눈물울 흘리며 애걸을한다

"아버지 살려 주세요, 엄마 나 좀 살려 주세요, 네? 나 안 죽이면 안 돼요?"

이렇게 살려 달라며 온 방안을 뒹굴며 생똥을 싸기를 몇 날이던가?

 

9월 15일

국방군과 유에 군이 인천과 군산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인천 상륙 자료사진)

 

밤마다 나타나던 인민군이 안 보이자  

우리 식구들은 고려 장터인 팔 매실 산속 은둔 생활을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험난 했던 피난길에서 매정하게 우리만 살겠다고 문규를 버리지 않았고

죽을 운명을 바꾸고 살려 냈다.

얼마나 다행이고 잘한 일인가?

 

그 아이가 바로 

병이 너무 심해 6.25 피난길에 희망을  잃고 언제 죽을지 몰랐지만

온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회복되어

지금은 

이렇게 건장하고 허우대 멀쩡하게 잘생긴  

우리 가문의 대표 인물이 되었다.

너만 보면 엄마는 참 자랑 스럽다.

 

(수복후 나이 8살, 마을 공동 수도에서 집까지 50m

언덕길을 물을 지고 나르던 노당. 물40kg 지게 10kg 이다)

 

(1960년 극장 앞에서 좌판 장사 하는 중1 노당

뒤에 좌판이 있고 그뒤는 극장표를 사는 관람객)

 

(우리는 이렇게 살아 돌아 왔다.6.25 피난을 같이 갔던

동생과 노당, 1964년 인천극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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