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꿈에 그리던 그녀의 목소리를 수화기로 들었다.
울먹이는 듯한 그러나 반가워하는 그녀의 목소리…
한시바삐 그녀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세차게 쏟아지는 초겨울 비속을 뚫고 약속장소인
춘천 맥심다방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던 그 녀와 드디어 만났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보고 싶었노라고,
갑자기 사라져서 미안했노라고,
연락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노라고,
그녀 또한 두 번째로 면회를 와보니 문규 씨가 전출했다는 통지를 받고
하늘이 깜깜했다고,
오빠의 진실이 이것이 었는가 하며,
그동안 몇번을 병원 앞길에서 서성 거렸다는 것이며.
얼핏 본 군용 트럭을 타고 가던 사람이 오빠였을 거라고,
그런데 도중에 내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아니었을 거라는 거,
잊을까?
잊어야 할 사람일까? 하고 고민했다는 것,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엉킨 실 풀듯이 풀어 나갔다.
(1969,11월)
그 녀 와의 다섯 번째 데이트는 비 오는 그날 오후 11;30까지였고
그 녀가 사는 곳 집 근처까지 택시로 가서 내려준 후
01:30경에 부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아니 청하지 않았는데도 잠이 소로로 찾아와 아주 엄청 맛있는 단잠을 잤다.
그렇게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던 나는
그 해 겨울 눈이 많이 쌓인 어느 날
그녀의 벙어리장갑에 내손도 같이 넣어 꼭 잡은 손을
내 야전 파카 주머니에 넣고 밀고 끌고 당기며
그렇게 즐겁게 겨울밤 거리를 걸으며 데이트를 즐겼었다.
한 동안 말없이 걷던 그녀가 절망의 한숨을 쉬며
"오빠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
"인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야 돼요"하는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까지….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었을까?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그녀를
그녀의 행복을 위하여 보내야만 했다.
그 녀가 가족과 함께 멀리 떠난다며 살며시 다가와 나의 어깨를 잡고 입 맞춤하며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억장이 무너지고 숨이 막히는 아픔을 참으면서도
그 녀를 가지 말라고 잡지를 못했다.
아니 잡을 용기가 없었던 아주 초라한 비굴男.
그러나 다시 한번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내가 해준 말은
"내가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떠나야 한다니 잡지 않을게,
하지만 부디 나보다 더 행복해야 돼…"
이 말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택시를 잡아 춘천까지 같이 가서 내려 주고
사나이 우는 마음,
몰래 아린 가슴을 쥐어박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 녀의 뒷모습을 오래 동안 서서 보면서…
가슴에 그 쓰라림을 남겨놓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 날밤 그녀가 입 맞춤 할 때의 그 고은 향기와
부드러운 감촉을 간직 한채...
PS
그 녀는 110 후송 병원 뒤편 냇가 모래밭에
노당이 군 주소를 적어 놓고 이곳을 보라고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모래위의 그 주소를 보고
며칠후
부대로 노당을 면회 온 아가씨였다
그 3년 후 당신의 마음이 노래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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